청년자립도전사업단, 제주 4.3 평화기념관 관람 후기: 어느 섬의 아픔과 희망의 이야기 제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미경 댓글 0건 조회 552회 작성일23-06-03 20:54본문
신**
제주 4.3 사건은 한국 역사상 아픈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는 사건입니다.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약 7년 동안 제주도에서 벌어진 반란과 국군의 무자비한 대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제주도 주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남기고 아직도 그 상처가 남아있지만, 동시에 그들의 힘과 저항의 의지를 증명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제주 4.3 사건은 주민들의 저항으로 시작되었고 군사적인 대응을 택한 정부로부터는 가혹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아픈 점은 그 희생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무고한 주민들이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잃으며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와 아픔은 제주도의토박이와 후손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오직 아픔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건은 피해자들의 희망과 저항의 이야기입니다. 제주도 주민들은 군사적인 탄압과 학살을 당하면서도 저항의 의지를 지키기 위해 힘을 내고, 희생한 자들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자유와 평등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으며, 이는 결국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아픔과 희망, 분단과 통일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현재와 미래의 세대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가치를 전달하고 보존해야 할 것입니다.
장**
4.3 평화공원 감상문 전부터 4.3 사건을 대충은 알고는 있엇는데 자세히는 알고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평화공원에서 좀더 어떻게 사건이일어 났는지 무엇이 그렇게 학살까지이어지게 된것인지 더 깊숙이 알게 되었다 5.18 민주운동보다 더한 7년이 넘는 세월동안 계속 되었다는게 충격적이 었고 마음깊이 이런 사건을 알지못한걸 부끄럽게 생각이 들었다. 이번 워크샵을 통해 알지못한 사건을 알게되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정**
흔히 5.18이나 6.25처럼 알고 있는 날이 아니었다.
사실 부끄럽기도 하지만 4.3이 어떤 날인지도 잘 몰랐었다.
들어가서 같이 일 하시는 구성원 분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시고
박물관에 있는 설명들을 읽으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원래 이런 거에 눈물이 많은데 들어가서 보는 와중에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서점에 인터뷰 하러 갔을 때도 서점 주인 분께서 이 날에 이야기를 꺼내셨지만
나는 알지 못 해서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공감을 하지 못 했다.
앞으로는 지나간 아픈 일들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찾아보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임**
제주 4.3 사건 들어보기만했지 알고있는건 없었다 이번기회에 알게되었지만 너무 잔인하고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픈사건인거 같다고 느꼈다. 들어보기만했지 알지못했던 사건을 워크샵을 통해 4.3 평화공원에가서 알게되어 유익한시간이였다.
이**
제주 워크숍 마지막 날이다. 오랜 시간 달려 도착한 4.3 평화기념관은 말 그대로 평화로워 보였다. 궁창은 맑고 탁 트여 있는 가운데,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풋풋한 냄새와 청량한 바람이 몸을 도닥였다. 5월의 따스한 햇살 아래 커다란 접시 모양 건물이 보이고 점점이 조각상들이 보였다.
추정 희생자만 3만 명에 이르는 참상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그저 막연히 5.18과 비슷하게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광복 후 제주와 국가가 주도한 7년간의 폭력과 인권 말살의 과정을 관람하는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여타의 제노사이드가 그렇듯 제주에서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음이 드리웠다. 가해자들은 총을 사용해 그들의 목숨을 빼앗은 후 총구 끝 칼날로 시체 더미를 헤집었다. 그들 중에는 나보다 어린 청년도 있었고 만삭의 임신부와 아직 이름조차 가지지 못한 갓난아이도 있었다. 이 참혹상은 희생자의 10%가 젖먹이와 어린이들이라는 것이 증명한다.
어쩌다 보니 실장님과 같이 관람하게 되었는데- 아닌가, 나를 배려해서 같이 다녀주셨나? - 봉안실을 나온 뒤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셨는데 대답을 제대로 못 한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서 말하자면, 봉안실을 들어서자마자 숨이 막혔다. 무거운 공기에 짓눌려 으깨질 것 같았다. 괴롭다. 도망치듯 나오니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의 유해가 안치되어있는 표석들이 잔뜩 놓여 있다. 맙소사. 잠깐 그늘을 찾아 의자에 앉아서 한숨을 돌리자니 커다랗고 예쁜 산이 보였다. 멍하니 바라보며 새들의 명랑한 노랫소리를 듣고 있자니, 저곳이 예전에 제주 주민들이 피신했던 산이란다. 처음 도착했을 때의 평화로웠던 전경이 이제는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틀 전 설렘은 안고 발을 내딛은 제주공항도 희생자들의 암매장터였다고 한다. 내 눈이 닿는 곳 어디도 피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제주에서 일정을 수행하는 동안 실장님이 운전을 하면서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하셨다. 제주만의 독특한 제사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셨는데, 그때는 ‘조금 특이하네.’하고 흘려들었었다. 그런데 4.3 사건에 대해 알고보니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북촌리 학살작전으로 이틀만에 400명이 죽었다. 7년 동안 제주 전역이 화마와 총성으로 뒤덮이고 피로 물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죽음이 겹쳐있던가. 나와 내 가족만의 제사가 아니라, 우리의 제사, 제주라는 공동체의 제사이기 때문에 격없이 누구나 제사에 참여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된게 아닐까. 어림짐작해보았다.
우리는 상설 전시 관람을 끝낸 후 봉안실과 비석이 있는 길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 세글자 이름 옆에 희생자들의 나이가 적혀있는데 한 자릿수를 심상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 짓는 시간에 “4.3이 제일 좋았어요.”라고 말했는데 진심으로 느껴졌나요? 건국 5칙을 읽으며 광복 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꿈꿔왔던 나라와 내가 꿈꾸는 세상, 인권이 바로 선 진정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건국 5칙>
-기업가와 노동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지주와 농민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여자의 권리가 남자와 같이 되는 나라를 세우자.
-청년의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세우자.
-학생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박**
제주4.3평화공원에 다녀왔다. 주변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안에 전시되있던 기록물,전시물들은 참옥했다. 사실 알고만 있었고 자세한 사실은 몰랐는데 이곳에 와서 많이 알아간것같다. 7년이 넘는 시간동안 고통받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4.3평화기념관은 4.3사건에 대해 잘 정리되있는 느낌을 받았고, 위령탑과 위령제단도 다녀오며 희생자분들의 명단을 보니 가슴속에 이 사건이 조금은 더 내 마음속에 들어온것 같았다.
서**
워크샵 마지막날 제주 4.3 평화공원에 방문했습니다.
평화 기념관에서는 참혹했던 그 날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와 생생한 증언들을 듣거나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위패 봉안실이었습니다. 4.3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쌓아 올려진 위패는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높았습니다.
댓글목록